1만 팔로워



1.  1만


결국 보름 만에 1만을 만들었다. 예상보다 빨랐다. 원래 목표는 한 달 안에 5,000명이었는데 말이다. 나의 10년, 아니 13년의 역사가 단 한순간에 증발했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은 내 생계이자 신념의 아카이브였던 ‘rabidstudio’를 지난 1년 사이 세 번이나 도려냈고, 이제는 더 이상 그 이름을 사용해서 계정을 만들 수조차 없게 막아놓았다.

사람들은 고작 SNS 계정 하나 사라진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묻겠지만, 그건 나를 남몰래 따라 하던 수많은 카피캣과 아마추어, 스튜디오 장사꾼들과 예술가 흉내를 내는 사진가들 사이에서 내가 모든 흐름의 ‘시발점’이자 ‘원본’임을 증명하던 유일한 물리적 근거였다. 무엇보다 멍청한 당신들부터 돌아봐라. 24시간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이 '고작 SNS'로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는 일 아닌가? 변화와 유행이 하루가 다르게 교체되며 노출과 어필이 절대적 가치인 현 시대에 SNS는 비즈니스이고 명함이며 일기장이고 역사이자 기록이다. 이 좆같은 흐름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정신이자 기류다. 앞으로의 세상은 세분화되어 나눠져 있던 모든 직업이 통합되어 하나로 갈 것이고, 남은 유일한 직업은 단 하나, '유명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역시나 그것의 가장 좋은 수단이자 방법이 SNS다.

그런 SNS상의 내 13년 기록이 사라진 자리엔 공허함과 분노가 남았고, 나는 벌거벗겨진 채 다시 광야에 서 있었다. 단 한순간에 모든 표본 자료를 잃어버린 과학자와 같았고, 순식간에 가게가 불타버린 유명 레스토랑의 오너와 같았다. 하지만 좌절하거나 우울해할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삶이더라.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내 생계가 걸린 상황에서 슬퍼한다고 아무도 내게 손을 뻗어주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귀를 간지럽히는 평범한 이들의 가벼운 동정과 위로뿐이었다. 불행 배틀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남과 다르게 치열하게 부딪쳐 온 내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누구나 할 법한 방법론들만 걱정이랍시고 제시할 뿐이었다. 가깝다고 믿은 이들에게 솔직한 마음을 전하며 내 열정에 용기를 얻길 바랐지만, 오히려 그들은 내 포기를 부추기며 어느새 나를 아래로 깔보는 시선을 보냈다. 내가 잘나갈 때는 우러러보던 그들이 이제 안쓰러운 듯 나를 내려다보는 모습은 참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최고의 방법은 하던 대로 다시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잃었던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1만 팔로워. 누군가는 고작 그 숫자에 일희일비하느냐고 비웃겠지만, 이 인스타그램이라는 천박한 숫자 놀음 속에서 1만은 단순한 카운트가 아니다. 조신하고 청렴한 척하며 나같이 '음흉하고 불결한 일'을 하는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이 결코 나에게 허락하고 싶어 하지 않는 ‘권력의 크기’다. 솔직히 씨발, 별 궁금하지도 않은 요가, PT, 필라테스 등 본인들 운동하는 모습부터 예쁜 일상을 올리며 박수받는 다수와 달리, 나 같은 이단아가 쥔 숫자의 힘은 저들의 가식을 부수는 도끼가 된다. 그런 이들조차 내가 궁금하지만 남 눈치가 보여 다가서지 못하는데, 1만이 넘어가 숫자의 세밀한 단위가 보이지 않게 되면 자존심 때문에 팔로우를 못 하던 위선자들도 비로소 내 영향력 앞에 무장해제된다. 그들에게 숫자는 곧 신뢰이자 권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한 계단씩 조금씩 나아가는 것을 지향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매니아층이 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일의 생계가 시급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촉박했고, 돈을 써서 사람을 살 게 아니라면 내가 아는 수천 가지 방법 중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SNS를 성적 자위 도구나 소모적 활동으로만 소비하는 이들이라도 일단 끌어모아 권력과 신뢰의 숫자를 만들면 기본 기반은 마련된다. 이후에는 조신한 척하는 그들까지 어렵지 않게 끌어들일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머저리들을 선동해 두 달 안에 10만 명을 모으는 것쯤은 좆도 아니지만, 지금은 우선 1만이다. 내 독기와 전략으로 일구어낸 최소한의 방어선이자, 위선자들의 자존심을 꺾고 내 존재를 인정하게 만들 수 있는 숫자의 방패인 것이다.


2. 예술가



나는 나 자신을 한 번도 예술가라 칭한 적이 없다. 소위 ‘예술가’라는 고귀한 탈을 쓴 기득권들이 혈연과 학연, 지연이라는 끈적한 카르텔 속에서 그들만의 잔치를 벌일 때, 나는 그 울타리 밖에서 태어난 이단아였다. 사진집을 내고 우아하게 갤러리에 사진을 걸며 타인의 억지 감동을 이끄는 공모전 따위는 나 같은 반항아에게 허락되지 않은 문이었다. 나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독하게 잘해내는 창작가이자, 내 안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솔직한 ‘변태’일 뿐이다. 내가 예술가라 칭하는 순간부터 그 착한 척하는 이들의 먹잇감이 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더러운 속내를 품은 채 감각보다 타인의 갈채에 도가 튼 사람들보다는 내 재능이 확실히 예술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성보다 본능에 더 치중하고 감성보다 감각에 더 집중하며 사업보다는 열정에 더 불붙는 사람이다. 누드, 부두아르, 섹시, 섹슈얼리티 등 성적 욕구를 발산해서 표현하는 혹자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당신도 나와 비슷한 사진 또는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결과물의 퀄리티와 질적인 부분에서 당신들과 나는 하늘과 땅 차이라 생각한다. 나는 입으로 나불대기 이전부터 내가 행하는 모든 행위와 표현적 수단이 윤리적 모순과 도덕적 본질에 조금 부족하더라도, 모든 결과물만큼은 촌스러움과 천박함을 없애고 그 개성을 잃지 않되 최대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무엇을 만들길 바랐다. 소위 말하는 작가주의적 방식과 상업적 방식의 교집합,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서 있기를 바랐다. 가장 적나라하면서도 가장 천박하지 않게 보이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은 진짜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닿을 거라 생각한다.


3. 여성



멍청한 이들은 내 사진의 노출과 자극에만 몰두하며 나를 포르노 제작자쯤으로 치부하겠지만, 나의 본질은 그 너머에 있다. 나는 여성을 성 상품화할 생각이 없다. 그건 내가 이 짓으로 떼돈을 벌 때나 하는 이야기다. 진정 여성을 상품화하려고 했다면 오히려 내가 그녀들을 돈을 주고 사 촬영을 했을 것이다. 어떤 의미로 해석될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나는 여성을 내 세계를 완성하는 유일한 영감으로 여긴다. 누군가는 이를 도구화라 비난할지 모르나, 그것은 카메라를 쥔 자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사진가는 언제나 대상을 필요로 하며, 하필 나는 남자이고 내게 가장 완벽한 피사체는 여자일 뿐이다.

나는 여자를 좋아하며 그들을 탐닉한다. 내 안의 변태적 성향 또한 숨길 생각이 없다. 오히려 그 노골적인 욕망이야말로 내 창작의 순수한 동력이다. 내가 그림을 그렸더라도 나는 항상 여성의 성적 부위를 부각했을 것이다. 내게 여성이 없다는 것은 손에 쥔 카메라가 없는 것과 같다. 기계가 없으면 사진을 찍을 수 없듯, 여성이 없다면 나는 표현하기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나는 여성을 단순히 '물건'으로 취급하는 대상화를 경멸한다. 어쩌면 여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웹상으로 자신의 성을 파는 여성들 본인들 아닌가? 오히려 나는 여성을 신격화(Deify) 한다. 만약 신이 인간의 형상을 빌려 이 땅에 왔다면, 그 모습은 반드시 여성일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의 작업은 고상한 예술적 변명이 아니다. 내 지독한 탐닉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여성을 이 땅의 유일한 신으로 추앙하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본능적인 제의(祭儀)다.

내가 대상에게 직접 ‘손대는 행위’는 개수작이다. 만진다는 건 꽤 중요하다. 물론 불결해 보이고 외설적으로 보이겠지만, 대화만으로 부족한 모델과의 친밀감을 형성해 벌어져 있는 거리를 좁히는 방식이다. 자연스러움은 친밀감에서 나온다. 은밀하지만 간접적인 접근이 서로의 벽을 허물게 만드는 좋은 수단이 되고 에로티시즘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촬영이 분업화되어 있는 것이 굉장히 싫다. 특히나 요즘 상업화되어 있는 촬영에서는 코디라든지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든지 너무 많다. 결국 결과물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건 나와 모델인데, 요즘 촬영장에는 쓸데없이 끼어드는 인원이 너무 많다. 그건 집중하는 데 굉장히 방해가 된다. 나는 내가 직접 헤어를 만져주고 옷매무새를 만져주는 것이 좋다. 브래지어 끈을 풀어준다든지, 팬티 라인을 다듬는다든지 하는 그 세밀함과 친밀감 있는 행동이 좋다. 사실 촬영이라는 것은 정말 별거 없다. 어차피 적절히 배치된 조명 아래서 좋은 카메라 버튼만 누르면 끝이다. 중요한 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과정 속에 모델과 내가 얼마나 집중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건 모델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다. 난 온전히 둘이서만 집중하고 싶다. 물론 그 행위로 내가 흥분을 한다든가 성적 욕구를 충족하는 불순한 의도는 전혀 없다. 그 정도로 찌질하지도 않고 나 정도의 변태는 그 정도로 흥분하는 멍청한 어린애도 아니다. 인간을 대상으로 인간을 이용해 인간을 표현하는 일이다. 체온과 감정은 필수이며 나와 카메라, 그리고 모델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다. 사실 우린 일상에서 흔하게 많이 하는 행동이다. 악수와 포옹처럼.



4. 변태




나는 분명 예술가는 아닌 변태가 확실하다. 나는 나를 21세기형 Araki Nobuyoshi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지만 그로 인해 나의 사진 철학이 어느 정도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변태라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변태는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솔직한 사람이고 변태에도 결이 있다. 내가 직접 경험한 남자들 중에는 오히려 그걸 숨기면서 온갖 위선과 가식을 떠는 검은 흑심과 더러움을 가진 '딸 가진 아빠'와 '여자친구를 가진 다정한 남자친구', '여자형제를 가진 착한 남동생과 오빠'가 훨씬 많았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 실체를 모르거나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추잡함은 불결함을 넘어서 아주 풍부하게 더러우며 실제 그들의 행태는 치졸하면서도 어떤 호러 영화보다도 역겹다. 적어도 그런 가식적인 도덕주의에 사로잡힌 위선자 새끼들보다는 내가 고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과 달리 나를 감추지 않고 절박할 정도로 어디에서든 날 아주 잘 드러내고 있으며 나에 대해서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런 그들보다 훨씬 매력적이며 당당하고 떳떳하면서 세상에 기여하는 작품을 남기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내 사진의 퀄리티와 질적인 면이 부족하다면 얼마든지 질타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그런 그들까지 충족해야 함은 앞으로도 내가 발전하고 해나갈 것들이 많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남긴 기록물과 작품에 자부심이 있고 존나 변태지만 존나 잘하고 있다는 걸 안다.

지난 13년간의 기록이 영구 정지라는 이름으로 세 차례나 물거품이 되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이 좆같은 SNS 전쟁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매일 아침 내 게시물이 무사한지 확인해야 하는 삶은 지옥 같았다. 지금도 앞으로도 부디 메타(Meta) 본사가 파괴되거나 망해버리길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일의 생계가 시급한 내게 주어진 유일한 비즈니스 수단이 이딴 짓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가장 극단적이고 치명적인 전략을 택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내가 했던 말들은 꼭 지키려 하고 틀린 적도 별로 없다. 평소처럼 한 계단씩 정직하게 나아갈 여유가 없었기에, 각종 규제의 날카로운 칼날 위를 아슬아슬하게 타 넘으며 단 보름 만에 1만 명의 팔로워를 다시 끌어모았다. 물론 대다수가 영양가 없는 그저 타인의 벗은 사진으로 어떻게든 더러운 짓을 더 해볼까만 고민하는 대가리 텅 빈 채로 평범한 척 일상 살아가는 남자들이지만.

이제 기반은 다시 마련되었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숫자의 우위를 만들었고 다시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섹슈얼리티로 미래의 클라이언트들의 호감을 이끌 생각이다. 물론 시간이 얼마나 허락해 줄지 모르겠지만. 혹시 내가 나아가는 방향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를 욕하고 싶으면 마음껏 욕하고, 내 사진이 마음에 든다면 마음껏 퍼날라라. 그 모든 노이즈가 나의 성전을 쌓는 벽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이 모든 흐름의 시발점은 나였다는 사실은 변함없고, 내 감각은 증발하지 않을 테니. 나는 변태다. 그리고 나는 천재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더 많은 여성들이 용기와 과감함을 가지고 나를 찾기를 바란다. 당신이 얼마나 못생겼든 뚱뚱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잘한다. 나는 당신을 감당할 수 있다. 물론 주머니에 돈은 두둑이 채워두고.